어제 한 후배의 고민상담을 했습니다.
그 후배는 유명한 대기업 반도체 부문에서 파트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상사의 과도한 업무 지적과 반복되는 보고서 수정, 이로 인해 발생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탈모까지 생기며 이어진 건강 문제로 퇴사를 해야 할지 제게 고민상담을 해왔습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답글을 보냅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지요? 회사에 나가기가 무섭고, 상사 얼굴만 떠올려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상황일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사의 화, 그리고 그 화를 사실상 고스란히 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보고서를 20번 이상 고치게 하고, 매 순간마다 부족하다고 몰아붙이는 그 상사의 태도가 당신을 매우 괴롭게 만들고 있군요. 이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정말 내가 무능한 사람인가, 내가 일을 이렇게나 못하나, 그런 자책과 실망이 마음속에서 커져가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 상사의 잦은 질타와 무시, 그리고 무한 반복되는 수정 요청은 마음에 심한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고, 결국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드러나 탈모증까지 겪게 되신 것이군요. 우울증과 탈모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제 마음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소중한 삶에서 고통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상사와 함께하는 그 환경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싱사와 나 사이의 관계도 결국 기대와 실망,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리느냐가 궁극적으로 행복과 괴로움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상사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상사는 매일같이 화를 내고, 당신이 제출하는 보고서에 대해 끝없이 불만을 제기합니다. 보고서 수정을 20번 이상 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당신을 압박하고 길들이기 위한 어떤 의도가 깔려 있거나, 혹은 상사 본인이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불안이 있어서 당신에게 엄격하게 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내 상사는 왜 저럴까?"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런 상사를 만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가'를 전생이나 운명의 문제로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게 단순히 업보나 전생 탓으로 돌려서 끝낼 수는 없어요. 지금 내 삶에 펼쳐진 현실이며, 이 현실을 어떻게 대할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이라는 조직에 몸담을 때, 당연히 일정한 기대를 하며 들어갑니다. 합리적인 상사, 공정한 평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등 많은 기대를 품지요.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상사는 내가 바라는 상사의 모습이 아니고, 조직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공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좋은 상사'의 이미지에 비해 현재 상사의 모습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 실망하고 괴로워지죠.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놓은 상사상의 허상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는 이래야 한다, 상사는 이래야 한다, 보고서 수정은 많아야 2~3번이면 충분하고, 그 이상이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는 기준'일 뿐, 상대방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은 무엇인지, 혹은 그냥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정한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거나 내 삶에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상사를 행복하게 해주러 이 회사에 왔나? 내가 상사의 사랑을 받으려고 이 회사에 들어왔나?" 아니지요. 당신이 직장에 들어온 이유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거나 경제적 안정을 이루거나, 아니면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상사에게 일방적으로 시달리다 보니 내가 원래 직장에 들어온 이유를 잊어버리고, 상사에게서 제대로 된 인정이나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당연히 답답하고 불행해집니다.
마치 서로 사랑한다고 결혼했지만 점점 서로에게 덕 보려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 자기 뜻대로 안 됐을 때 실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갈등하는 부부처럼, 당신과 상사 사이에도 비슷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할지 말지는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요? 결혼과 이혼에 비유를 해봅시다. "결혼했으니 반드시 살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혼할 때는 그에 따른 과보나 책임을 질 각오도 해야 합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은 당신이 원하면 계속 다닐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쇠사슬로 묶어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퇴사를 결심하기 전, 그리고 그만두지 않고 버티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선 퇴사를 한다면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신을 매일같이 지적하고 수십 번 수정하게 만드는 상사는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 대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이직 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 상실 등 새로운 숙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마음이 무너지고 건강까지 해치는 수준이라면, 과연 그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옳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행복은 조건에 달리지 않습니다. 결혼이건 취업이건, 특정 제도나 상황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퇴사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사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당신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상사가 매일 보고서 수정을 20번이나 시키는 상황에서 "이건 말이 안 돼.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만 반복하면 분노와 스트레스는 계속 쌓입니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상사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은 "이것도 사회생활의 한 부분이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떨까요. 물론 이건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당한 압박을 합리화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함으로써 내 마음의 괴로움을 덜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같이 살아도 외롭고 귀찮아집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이 상사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만났나?" "이렇게 사는 건 내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 거야"라며 불평만 하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 짜증나고 답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이 상사도 불안하고, 나름대로 회사 내에서 뭔가를 증명해야 하고, 혹은 더 상위 관리자에게 쪼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사람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는 조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내가 관점을 바꾸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아도 지금 겪는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겪나?" 하는 생각 대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생 운운하며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아요.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선택'입니다. 퇴사할 수도 있고, 인사팀이나 상위 관리직에게 상황을 건의해 볼 수도 있습니다. 회사 내의 노무 관련 기관이나 외부의 전문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조금 더 버텨서 경력을 쌓은 뒤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전략을 세울 수도 있지요. 이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에게서 응원이나 칭찬, 혹은 합리적 대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깨졌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얻을 수 없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상사의 방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든가, 아니면 이 회사를 떠나 다른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을 구하든가, 이런 식의 주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것처럼, 자신을 파괴하는 직장 생활을 억지로 지속하는 것은 결코 당신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함부로 퇴사를 결정하기는 어렵겠지요. 가정 형편, 경제 사정, 이직 시장의 상황, 나이와 경력 등 다양한 현실적 조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을 차분히 살피며, "내가 이 회사에 남아 있을 때와 떠났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까?"를 냉정히 비교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당신이 내리는 당신 인생의 결정이니, 남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책임지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법륜스님의 글에는 "온쪽"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온쪽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스스로 서는 힘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은 상태, 즉 내 마음이 그 자체로 온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직장생활에서 "온쪽"이 된다는 건, 상사의 평가나 태도에 완전히 흔들리지 않고 내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내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 스트레스와 우울증, 탈모까지 겪으며 내가 흔들리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것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고, 여기서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볼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으시면 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징후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자기 마음을 보살피는 과정은 어떤 선택을 하든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글에서도 강조했듯,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관계나 상황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상사에게 인정을 받건 못 받건, 그 사람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게 말처럼 쉽나요?"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요. 맞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금의 괴로움에 휩쓸려서 무작정 도망치듯 퇴사하는 것, 혹은 반대로 아무 대응 없이 계속 버티며 스스로를 소진하는 것을 피하려면, 마음을 조금 더 넓게,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선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지, 그런 것들을 차분히 정리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두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사에게 직간접적으로 내가 겪는 어려움을 전달해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회사의 인사 담당자나, 상사와 당신 사이를 중재해줄 다른 선배나 동료를 통해 완충지대를 마련할 수도 있지요. 이처럼 현실적인 노력도 함께 해야 합니다. 단지 마음 다스리기에만 몰입해서는 상황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접근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화나고 서러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오직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수 있으나, 마음의 중심을 잡으면 '달리 대화할 방법이 있을까?', '이 문제를 회사 내부 절차로 해결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 이직 준비를 체계적으로 해볼까?' 하는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하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직장상사와의 갈등과 지금의 괴로움이 반드시 당신의 불운이나 업보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당신 삶에 닥친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해보세요.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세요. 만약 그 상사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그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삶을 파괴한다면, 선택지를 넓히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길을 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세요. "내가 못나서 그렇다"는 식의 자기비하를 멈추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 환경이 나와 안 맞을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세요. 그리고 결정하기 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글에서 말하듯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불안한 상황에도 덜 외롭고 덜 괴롭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최우선은 당신 자신의 마음과 건강입니다. 우울증과 탈모는 마음과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 환경은 너무 힘들어"라고 당신 자신을 향해 호소하는 몸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필요하다면 전문 의료진이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고, 그리고 그 속에서 회사와 나 자신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한 뒤에 어떤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결혼이든 취업이든, 잘 살려면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선택지에서도 결국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가 장기적으로 더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존중하고,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보세요.
감사합니다.
어제 한 후배의 고민상담을 했습니다.
그 후배는 유명한 대기업 반도체 부문에서 파트장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상사의 과도한 업무 지적과 반복되는 보고서 수정, 이로 인해 발생한 스트레스와 우울감, 탈모까지 생기며 이어진 건강 문제로 퇴사를 해야 할지 제게 고민상담을 해왔습니다.
이에 아래와 같이 답글을 보냅니다.
요즘 많이 힘드시지요? 회사에 나가기가 무섭고, 상사 얼굴만 떠올려도 가슴이 답답해지는 그런 상황일 것 같습니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상사의 화, 그리고 그 화를 사실상 고스란히 받는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보고서를 20번 이상 고치게 하고, 매 순간마다 부족하다고 몰아붙이는 그 상사의 태도가 당신을 매우 괴롭게 만들고 있군요. 이해합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자신에 대한 확신이 무너지고, 정말 내가 무능한 사람인가, 내가 일을 이렇게나 못하나, 그런 자책과 실망이 마음속에서 커져가는 상황일 것입니다. 그런 상사의 잦은 질타와 무시, 그리고 무한 반복되는 수정 요청은 마음에 심한 스트레스를 쌓이게 하고, 결국 그 스트레스가 몸으로 드러나 탈모증까지 겪게 되신 것이군요. 우울증과 탈모라니, 얼마나 힘들까 생각하면 제 마음도 안타깝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소중한 삶에서 고통받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매일같이 자신을 몰아붙이는 상사와 함께하는 그 환경을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싱사와 나 사이의 관계도 결국 기대와 실망, 욕심과 두려움, 그리고 이해관계 속에서 움직인다는 것이고,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마음을 다스리느냐가 궁극적으로 행복과 괴로움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선, 상사와의 관계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부터 해보면 어떨까요? 지금 상사는 매일같이 화를 내고, 당신이 제출하는 보고서에 대해 끝없이 불만을 제기합니다. 보고서 수정을 20번 이상 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당신을 압박하고 길들이기 위한 어떤 의도가 깔려 있거나, 혹은 상사 본인이 지나치게 완벽주의적이거나, 아니면 다른 불안이 있어서 당신에게 엄격하게 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흔히 "내 상사는 왜 저럴까?" "내가 전생에 무슨 업보가 있어서 이런 상사를 만났나?" 하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왜 나에게 이런 고통이 찾아왔는가'를 전생이나 운명의 문제로 돌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진실은 그렇게 단순히 업보나 전생 탓으로 돌려서 끝낼 수는 없어요. 지금 내 삶에 펼쳐진 현실이며, 이 현실을 어떻게 대할지는 온전히 나의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직장이라는 조직에 몸담을 때, 당연히 일정한 기대를 하며 들어갑니다. 합리적인 상사, 공정한 평가, 성장할 수 있는 환경 등 많은 기대를 품지요. 그러나 현실은 기대와 다를 수 있습니다. 상사는 내가 바라는 상사의 모습이 아니고, 조직은 내가 이상적으로 그려왔던 공간이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속에 그려놓은 '좋은 상사'의 이미지에 비해 현재 상사의 모습은 너무나 거리가 멀어 실망하고 괴로워지죠.
이때 중요한 것은 "내가 마음속으로 그려놓은 상사상의 허상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상대는 이래야 한다, 상사는 이래야 한다, 보고서 수정은 많아야 2~3번이면 충분하고, 그 이상이면 비상식적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가 바라는 기준'일 뿐, 상대방은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은 무엇인지, 혹은 그냥 원래 그런 성향의 사람인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인정한다고 해서 그를 칭찬하거나 내 삶에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사실을 사실대로 보는 힘을 기르자는 겁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습니다. "내가 상사를 행복하게 해주러 이 회사에 왔나? 내가 상사의 사랑을 받으려고 이 회사에 들어왔나?" 아니지요. 당신이 직장에 들어온 이유는 자신의 커리어를 쌓거나 경제적 안정을 이루거나, 아니면 일 자체에 보람을 느끼기 위해서였을 겁니다. 그런데 이제 상사에게 일방적으로 시달리다 보니 내가 원래 직장에 들어온 이유를 잊어버리고, 상사에게서 제대로 된 인정이나 적절한 대우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만 몰두하게 됩니다. 당연히 답답하고 불행해집니다.
마치 서로 사랑한다고 결혼했지만 점점 서로에게 덕 보려는 마음, 기대하는 마음, 자기 뜻대로 안 됐을 때 실망하는 마음으로 인해 갈등하는 부부처럼, 당신과 상사 사이에도 비슷한 기제가 작동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관계를 지속해야 할지 말지는 어떻게 판단하면 좋을까요? 결혼과 이혼에 비유를 해봅시다. "결혼했으니 반드시 살라는 법은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이혼할 때는 그에 따른 과보나 책임을 질 각오도 해야 합니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장은 당신이 원하면 계속 다닐 수도 있고, 그만둘 수도 있습니다. 누구도 당신을 쇠사슬로 묶어 두지는 않습니다. 다만 퇴사를 결심하기 전, 그리고 그만두지 않고 버티기로 마음먹기 전에는 이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점검해야 합니다.
우선 퇴사를 한다면 이 스트레스에서 해방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적어도 지금 당신을 매일같이 지적하고 수십 번 수정하게 만드는 상사는 더 이상 당신을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그 대신 새로운 직장을 구하는 과정의 어려움과, 이직 후에도 비슷한 문제가 재발할지 모른다는 불안, 그리고 경제적 안정성 상실 등 새로운 숙제가 생길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마음이 무너지고 건강까지 해치는 수준이라면, 과연 그 회사를 계속 다니는 것이 옳은가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자연스럽습니다. 행복은 조건에 달리지 않습니다. 결혼이건 취업이건, 특정 제도나 상황이 행복을 담보하지 않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행복을 만드는 것은 나 자신이고, 내가 무엇을 선택하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퇴사하지 않고 버틸 수도 있지 않을까요? 상사의 존재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만약 당신이 상황을 좀 더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상사가 매일 보고서 수정을 20번이나 시키는 상황에서 "이건 말이 안 돼. 이 사람은 나를 괴롭히기 위해 이 짓을 하는 거야!"라는 생각만 반복하면 분노와 스트레스는 계속 쌓입니다. 그런데 시선을 돌려보면 어떨까요? "상사는 왜 이렇게까지 할까? 무엇이 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혹은 "이것도 사회생활의 한 부분이고, 내가 성장하는 과정이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시선을 돌리면 어떨까요. 물론 이건 무조건 참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부당한 압박을 합리화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다만 내가 이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을 조금 달리 함으로써 내 마음의 괴로움을 덜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하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닫으면, 같이 살아도 외롭고 귀찮아집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이 상사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만났나?" "이렇게 사는 건 내 팔자가 사나워서 그런 거야"라며 불평만 하면,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에 짜증나고 답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문을 조금 열어, 이 상사도 불안하고, 나름대로 회사 내에서 뭔가를 증명해야 하고, 혹은 더 상위 관리자에게 쪼들리고 있을 수도 있다고 가정해 본다면, 그 사람에 대한 증오심과 분노는 조금 누그러질 수 있습니다. 내가 관점을 바꾸면, 완전히 바뀌지는 않아도 지금 겪는 고통의 강도가 줄어들 수 있습니다.
또한,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기에 이런 일을 겪나?" 하는 생각 대신,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내가 지금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하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전생 운운하며 이유를 외부에서 찾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의 해결책이 되지 않아요. 내가 직접적으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의 선택'입니다. 퇴사할 수도 있고, 인사팀이나 상위 관리직에게 상황을 건의해 볼 수도 있습니다. 회사 내의 노무 관련 기관이나 외부의 전문기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조금 더 버텨서 경력을 쌓은 뒤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전략을 세울 수도 있지요. 이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들을 생각해보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상사에게서 응원이나 칭찬, 혹은 합리적 대우를 기대합니다. 그것은 당연한 바람입니다. 하지만 그 기대가 깨졌을 때, 우리는 그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까를 고민해야 합니다. 얻을 수 없다면 내가 다른 선택을 해야 합니다. 상사의 방식을 개선하려고 노력한다든가, 아니면 이 회사를 떠나 다른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조건을 구하든가, 이런 식의 주도적인 접근이 필요합니다.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억지로 이어가는 것처럼, 자신을 파괴하는 직장 생활을 억지로 지속하는 것은 결코 당신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물론, 함부로 퇴사를 결정하기는 어렵겠지요. 가정 형편, 경제 사정, 이직 시장의 상황, 나이와 경력 등 다양한 현실적 조건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조건들을 차분히 살피며, "내가 이 회사에 남아 있을 때와 떠났을 때 어떤 결과가 있을까?"를 냉정히 비교해 보는 거예요. 그리고 그 결과 무엇을 선택하든 그것은 당신이 내리는 당신 인생의 결정이니, 남을 탓하기보다는 스스로 책임지고 받아들이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법륜스님의 글에는 "온쪽"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온쪽이라는 것은, 내 안에서 스스로 서는 힘을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고, 둘이 있어도 귀찮지 않은 상태, 즉 내 마음이 그 자체로 온전한 상태를 말합니다. 직장생활에서 "온쪽"이 된다는 건, 상사의 평가나 태도에 완전히 흔들리지 않고 내 가치를 스스로 인정하고, 내 인생의 방향을 스스로 정하는 힘을 기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지금 스트레스와 우울증, 탈모까지 겪으며 내가 흔들리는 건 당연합니다. 하지만 흔들리는 자신을 비난하거나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이것이 내가 지금 겪고 있는 현실이고, 여기서 내가 나를 어떻게 돌볼지 고민하는 계기로 삼으시면 됩니다.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징후가 있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신을 돌보고, 자기 마음을 보살피는 과정은 어떤 선택을 하든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글에서도 강조했듯, 스스로 행복해질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이 관계나 상황을 더 부드럽게 만드는 열쇠입니다. 상사에게 인정을 받건 못 받건, 그 사람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마음의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게 말처럼 쉽나요?" 하고 반문할 수도 있지요. 맞습니다. 결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결정을 내리기 전에, 지금의 괴로움에 휩쓸려서 무작정 도망치듯 퇴사하는 것, 혹은 반대로 아무 대응 없이 계속 버티며 스스로를 소진하는 것을 피하려면, 마음을 조금 더 넓게,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은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지, 그리고 어떤 선택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를 이끌지, 그런 것들을 차분히 정리해보세요. 그 과정에서 마음의 문을 열어두면, 지금 겪고 있는 고통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상사에게 직간접적으로 내가 겪는 어려움을 전달해볼 수도 있습니다. 혹은 회사의 인사 담당자나, 상사와 당신 사이를 중재해줄 다른 선배나 동료를 통해 완충지대를 마련할 수도 있지요. 이처럼 현실적인 노력도 함께 해야 합니다. 단지 마음 다스리기에만 몰입해서는 상황이 바뀌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새로운 방법, 새로운 접근이 눈에 들어오기 마련입니다. 화나고 서러운 마음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오직 '도망치고 싶다'는 생각만 가득할 수 있으나, 마음의 중심을 잡으면 '달리 대화할 방법이 있을까?', '이 문제를 회사 내부 절차로 해결할 수 있을까?', '나를 위해 이직 준비를 체계적으로 해볼까?' 하는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하셨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직장상사와의 갈등과 지금의 괴로움이 반드시 당신의 불운이나 업보 때문이 아니라, 단지 당신 삶에 닥친 하나의 사건으로 이해해보세요. 그리고 이 사건을 통해 내가 어떤 선택을 할지 진지하게 고민해보세요. 만약 그 상사에게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고, 그 회사에 남아있는 것이 삶을 파괴한다면, 선택지를 넓히고 용기를 내어 새로운 길을 가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 과정에서 자신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세요. "내가 못나서 그렇다"는 식의 자기비하를 멈추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이 환경이 나와 안 맞을 수도 있지"라고 스스로를 위로하세요. 그리고 결정하기 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고 신중히 살펴보는 과정에서, 그 글에서 말하듯 내가 마음의 문을 열면 불안한 상황에도 덜 외롭고 덜 괴롭게 되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결정을 내리든, 최우선은 당신 자신의 마음과 건강입니다. 우울증과 탈모는 마음과 몸이 보내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이 환경은 너무 힘들어"라고 당신 자신을 향해 호소하는 몸의 목소리를 무시하지 마세요. 스스로에게 충실하고, 필요하다면 전문 의료진이나 상담가의 도움을 받고, 그리고 그 속에서 회사와 나 자신의 관계를 명확하게 정리한 뒤에 어떤 결정을 내리시기 바랍니다. 결혼이든 취업이든, 잘 살려면 조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지금 당신 앞에 놓인 선택지에서도 결국 당신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하느냐가 장기적으로 더 행복한 방향으로 이끌 것입니다. 부디 스스로를 존중하고, 작은 변화부터 시작해보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