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
공자는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해 공부했고, 요즘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라고 했습니다.
위기지학은 자신을 충실히 쌓아가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고 과시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은 배움으로써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발견하며 이에 기뻐합니다. 매일매일 발전하는 나의 모습에 그 한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수시로 비교하며 남보다 앞서기 위한 공부를 합니다. 남보다 빠른 출세,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이 되면 공부를 멈춥니다. 예컨대 성공을 이루면 더 이상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출세를 바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자포 자기하며 공부를 멈춥니다. 애초에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올바른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위인지학을 해왔습니다. 변호사나 노무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했었고, 회사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공부를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 2005년 사법시험 2차에서 떨어지고 2006년 8지선다로 변경된 사법시험 1차에 적응 실패로 낙방했습니다.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해 더 이상 도전하지 못했고 2006년 지방의 한 회사에 취업하였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회사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매일 밤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인사업무를 잘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일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승진하였습니다.
2016년 성과급을 합한 연봉이 1억 원을 넘었을 때 희열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후 2020년까지 저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5년 동안 22번이나 시험관 아기를 갖기 위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2020년 11월에 아내의 건강상 단 한번 정도의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저는 충격을 먹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말이 아닌 '아내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말에 말입니다. 그 힘든 시술을 22번이나 시켜서 아내의 건강을 상하게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에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건강을 돌보고, 마지막 남은 기회를 잘 살려보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아기를 갖게 되면 아내의 출산을 돕고, 아기의 첫 돌까지 본 후 다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정도 실력이면 이직이 어렵겠어?라는 뜬금없는 자신감도 한 몫했습니다.
다행히도 21년에 아내가 임신하였고, 아이는 건강하게 이 세상의 빚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대로 23년 1월 아이의 첫 돌을 보고 이직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40대 중반에 2년간의 공백은 제게 큰 오점이 되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A사의 최종면접까지 간 것을 제외하면 서류전형 합격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종종 술자리에서 허허 같이 웃던 모 증권사의 최연소 임원이 된 동료나 S전자 팀장이 된 동료도 점차 전화연락이 뜸해지다가 아예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잘 나가고 있는 친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변호사가 된 대학 동창들도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곤 제게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저의 모든 자존감과 자존심이 무너졌습니다. 이 사회에서 제가 지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위인지학"이 아닌 "위기지학"으로의 결정
저는 이 때 생각했습니다. 이 위기에서 나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다시 노무사 공부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는가? 저의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 오류가 난 컴퓨터처럼 멈추었습니다. 몇 날 몇 일을 고민하였고 결국 답을 내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남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부를 하자. 내 내면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공부를 하자"
였습니다.
그래서 이전 내 분야에 전혀 동떨어진 코딩 공부와 내 방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인문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코딩 공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온라인 커뮤니티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텅텅 빈 내 속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딩을 배워서 블로그를 직접 제 손으로 만들었고, 매일 매일 나의 배움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그 블로그가 이렇게 지금의 hahahaHR.com이 되었고,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게 되었고, 독립출만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점차 없어졌으며, 금전적으로는 현재 전혀 수익이 없으나 내 속에 살던 "나"라는 아이가 이제는 단단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공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가르친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사람은 언젠가는 그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다산은 고난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을 바탕으로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다산의 두 아들은 폐족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큰아들은 고 위직은 아니었으나 관직에도 진출할 수 있었고, 두 아들 모두 시인으로 또 문장가로 높은 명성을 누렸습니다.
다산은 실력을 쌓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데 매진하는 사람은 다른 하찮은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며, 어느 순간이 되면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실력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배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가득 찬 독이 넘치듯이, 물이 잔뜩 밴 옷감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아도 실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도 다산의 말처럼 제 자신을 다듬고 채울 것입니다. 아직 실력이 미천하지만 제가 쓴 문장 하나하나에 제 실력이 묻어나올 수 있도록 "위인지학"이 아닌 "위기지학"을 멈추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기도입니다.

인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땅에 남기는 발자국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책 바로 보러 가기
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
공자는 "옛날 학자는 자신을 위해 공부했고, 요즘 학자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공부를 한다(古之學者爲己(고지학자위기) 今之學者爲人(금지학자위인))"라고 했습니다.
위기지학은 자신을 충실히 쌓아가는 공부이고 위인지학은 남에게 보이고 과시하기 위한 공부입니다.
위기지학을 하는 사람은 배움으로써 어제보다 더 나은 오늘을 발견하며 이에 기뻐합니다. 매일매일 발전하는 나의 모습에 그 한계는 없습니다.
하지만 위인지학을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과 수시로 비교하며 남보다 앞서기 위한 공부를 합니다. 남보다 빠른 출세,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기에 어느 순간이 되면 공부를 멈춥니다. 예컨대 성공을 이루면 더 이상 공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출세를 바랄 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도 마찬가지로 자포 자기하며 공부를 멈춥니다. 애초에 공부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고 올바른 뜻이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위인지학을 해왔습니다. 변호사나 노무사가 되기 위해서 공부를 했었고, 회사에서 남보다 빨리 승진하기 위해 공부를 했었습니다. 젊은 시절 2005년 사법시험 2차에서 떨어지고 2006년 8지선다로 변경된 사법시험 1차에 적응 실패로 낙방했습니다. 집안 사정도 넉넉하지 못해 더 이상 도전하지 못했고 2006년 지방의 한 회사에 취업하였습니다.
저는 변호사가 되지 못한 것이 한이 되었는지, 회사에서 그 어느 누구보다도 법을 잘 아는 사람으로 인정받기 위해 매일 밤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인사업무를 잘하기 위해 밤을 새우며 일을 했습니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다른 이들보다 빠르게 승진하였습니다.
2016년 성과급을 합한 연봉이 1억 원을 넘었을 때 희열은 아직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후 2020년까지 저는 회사에서 승승장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위기가 제게 찾아왔습니다.
저와 와이프는 5년 동안 22번이나 시험관 아기를 갖기 위해 도전했지만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2020년 11월에 아내의 건강상 단 한번 정도의 시험관 시술이 가능하다는 의사의 말에 저는 충격을 먹었습니다. "단 한 번의 기회"라는 말이 아닌 '아내 건강"이 안 좋아졌다는 말에 말입니다. 그 힘든 시술을 22번이나 시켜서 아내의 건강을 상하게 했어야 했나라는 생각에 제 자신을 자책했습니다.
그래서 아내의 건강을 돌보고, 마지막 남은 기회를 잘 살려보기 위해 퇴사를 했습니다. 아기를 갖게 되면 아내의 출산을 돕고, 아기의 첫 돌까지 본 후 다시 이직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 정도 실력이면 이직이 어렵겠어?라는 뜬금없는 자신감도 한 몫했습니다.
다행히도 21년에 아내가 임신하였고, 아이는 건강하게 이 세상의 빚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대로 23년 1월 아이의 첫 돌을 보고 이직 준비를 했습니다.
그런데 모든 게 제 생각과 달랐습니다. 40대 중반에 2년간의 공백은 제게 큰 오점이 되었습니다. 글로벌 기업인 A사의 최종면접까지 간 것을 제외하면 서류전형 합격조차 되지 않았습니다.
종종 술자리에서 허허 같이 웃던 모 증권사의 최연소 임원이 된 동료나 S전자 팀장이 된 동료도 점차 전화연락이 뜸해지다가 아예 연락이 오지 않았습니다. 서울지방검찰청에서 잘 나가고 있는 친한 고등학교 동창 친구도 연락이 끊겼습니다. 변호사가 된 대학 동창들도 모두 연락이 끊겼습니다. 그리곤 제게 공황장애가 왔습니다. 저의 모든 자존감과 자존심이 무너졌습니다. 이 사회에서 제가 지워진 기분이었습니다.
"위인지학"이 아닌 "위기지학"으로의 결정
저는 이 때 생각했습니다. 이 위기에서 나는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다시 노무사 공부를 해야 하는가? 아니면 다른 자격증 공부를 해야 하는가? 저의 머리는 무엇을 어떻게 결정해야 할지 몰라 오류가 난 컴퓨터처럼 멈추었습니다. 몇 날 몇 일을 고민하였고 결국 답을 내었습니다.
"이럴 때일수록 남들과 함께 걸을 수 있는 공부를 하자. 내 내면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공부를 하자"
였습니다.
그래서 이전 내 분야에 전혀 동떨어진 코딩 공부와 내 방 구석에 처박혀 있었던 인문학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습니다. 코딩 공부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할 온라인 커뮤니티를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 싶었고, 인문학을 공부하기 시작한 건 텅텅 빈 내 속을 채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게 코딩을 배워서 블로그를 직접 제 손으로 만들었고, 매일 매일 나의 배움을 기록하기 위해 블로그에 글을 썼습니다. 그 블로그가 이렇게 지금의 hahahaHR.com이 되었고, 인터넷 신문사를 만들게 되었고, 독립출만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공황장애는 점차 없어졌으며, 금전적으로는 현재 전혀 수익이 없으나 내 속에 살던 "나"라는 아이가 이제는 단단한 진짜 "어른"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끼고 있습니다.
내공은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드러나는 것이다.
다산이 두 아들에게 가르친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사람은 언젠가는 그 진가를 발휘할 기회가 찾아옵니다. 다산은 고난을 통해 얻은 지혜와 통찰을 바탕으로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다산의 두 아들은 폐족의 한계를 넘어섰습니다. 큰아들은 고 위직은 아니었으나 관직에도 진출할 수 있었고, 두 아들 모두 시인으로 또 문장가로 높은 명성을 누렸습니다.
다산은 실력을 쌓고 자신을 다듬어 가는 데 매진하는 사람은 다른 하찮은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으며, 어느 순간이 되면 그동안 쌓아온 내공과 실력이 자연스럽게 겉으로 배어 나오게 된다고 합니다. 가득 찬 독이 넘치듯이, 물이 잔뜩 밴 옷감에서 물이 흘러나오듯이, 드러내지 않고 자랑하지 않아도 실력이 드러나고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저도 다산의 말처럼 제 자신을 다듬고 채울 것입니다. 아직 실력이 미천하지만 제가 쓴 문장 하나하나에 제 실력이 묻어나올 수 있도록 "위인지학"이 아닌 "위기지학"을 멈추지 않고 실천하겠습니다.
이것은 저의 기도입니다.
인간은 허공에 흩어지는 말이 아니라 땅에 남기는 발자국으로 스스로를 증명한다.
책 바로 보러 가기